우리나라 광역전철에 착석 서비스가 가능할까?
1. 문제제기
일본 철도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일본에서처럼 광역전철에 착석이 보장되는 서비스(그린샤, 라이너, 근교형 전동차 등)를 제공하자는 의견이 종종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일본철도 영향을 너무 많이 받은 것 때문에...
우리와 일본의 철도환경이 비슷해보여서...
그냥 일본에 있는 것 그대로 도입하면 될 것 같은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비슷하지만 다른 부분이 너무 많다.
그래서 위 의견을 그대로 수용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에는...
결론부터 말하면 어렵다고 본다.
2. 왜 어려운가?
(1)무궁화호의 존재와 저렴한 운임
우리나라 철도 등급에는 일본에는 없는 무궁화호라는 아주 특이한 존재가 있다.
일반적으로 열차 등급에는 그 성격에 맞는 수요가 있는데...
무궁화호에는 장거리 수송에 근거리 통근/통학 수요까지 모두 담당한다.
그런데 이 무궁화호의 서비스가 일본과 비교하면 가격대비 정말 괜찮은 축에 들어간다.
심지어 실내는 일본의 다소 오래된 특급열차나 지금은 없어진 급행열차와 비슷한 수준이다.
특히나 운임을 보면 더 이야기가 명확해지는데...
아래 캡쳐 참조...
▼ 일본 신오사카-교토 사이의 운임(거리 39km) - Hyperdia캡쳐
맨 위에 있는 게 보통열차(우리나라 일반통근전철과 유사)
가운데가 쾌속(우리나라의 급행전철과 유사)
맨 아래가 특급 선더버드(우리나라의 새마을 유사)인데...
운임이 보통/쾌속은 560엔이고 특급은 좌석 지정의 경우 1530엔이다.
쉽게 X10만 해도 우리돈으로 보통/쾌속은 5600원 특급은 15300원이다.
그 다음 캡쳐에서 우리나라와 비교해보자...
▼ 우리나라 무궁화/새마을호의 운임 - 철도공사 홈페이지 캡쳐
서울에서 수원사이의 거리는 41km이다.(신오사카-교토는 39km)
무궁화호는 2700원
새마을호는 4800원이다.
가장 높은 등급의 ITX-새마을이 일본의 보통 열차보다 싸다.
즉, 일본은 우리나라 수도권 전철과 비슷한 열차 서비스에 우리나라 새마을보다 더 비싼 요금을 받고 있는 것이다.
위 캡쳐의 간사이권의 신쾌속이라고 해도 좌석이 옛날 통일호와 비슷한 전환식 의자라서 새마을보다 못한 건 여전하다.
▼ 우리나라 수도권 전철의 운임은 아래와 같다. - Daum 지도 캡쳐
카드 사용시 1850원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저렴한 운임으로 이미 착석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경부, 중앙선 한정이긴 하지만...)
일본이 워낙 운임이 비싸고 보통/쾌속과 특급 열차 사이의 운임 격차가 크기 때문에...
그 사이를 커버하는 좌석형 열차가 나올 수 있었다.
일본으로 치자면 구형 특급/급행 정도의 시설을 갖춘 무궁화호가 저렴한 운임으로 이미 운행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나라 광역 전철에 굳이 착석 보장 서비스를 도입할 이유가 없다.
물론 광역전철과 무궁화호 사이의 운임을 (위의 사례의 경우 대략 2000~2300원 정도?) 받으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운용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굳이 그런 시도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무궁화호의 존재가 버젓이 있는데 1명당 2000~2300원 받자고 차량을 새로 구입 또는 개조해서 굴릴 매력적인 요소가 전혀없다.
무궁화호도 굴릴 수록 적자라는 말이 있는 판국에...
뭣하러 저런 삽질을 할까?
게다가 좌석형을 도입하면 입석 승객 처리문제가 떠오를텐데...
입석을 못타게 해도 문제이고 타게해도 문제가 된다.
입석을 못타게 하면 최대 좌석이 80석으로 가정할 경우...
운영회사 입장에서는 입석도 못타는데 가격은 무궁화보다 저렴하게 받는...
딱 망하기 좋은 상황이고...
입석을 타게하면 좌석형 특유의 출입문 개수가 적어져서 승하차 시간의 지연 문제가 생기고...
무임승차 및 승객간 자리 다툼 등의 문제가 생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과거 그래왔던 것처럼...
맨아래 등급의 열차를 폐지시켜서 운임을 상승시키는 방법을 써왔던 과거를 반복한다면...
그 때에는 가능하리라 본다.
현재 무궁화호의 신차 도입이 안되고 있는데...
무궁화호가 완전 폐지되거나 수도권에 운행이 중지되는 상황이 됐을 때..
그때에는 광역전철에도 좌석형 서비스를 생각해볼만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
(2)광역철도와 일반철도가 명확하게 분리된 상황 및 시민의식
우리나라 철도의 특징 중에 하나가 광역철도와 일반철도가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 때문에 광역철도와 일반철도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는 차량의 경우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게 ITX-청춘이다.
새마을 보다 윗 등급의 특급열차로 좌석이 보장되는 열차인데...
고상홈 전용 차량이라 경춘선에 일반 전동차가 서는 곳에 같이 승하차를 하게 된다.
그래서 ITX-청춘에 무임 승차도 엄청 많고...
무임 승차 적발시에 "전철 구간에 무슨 좌석 열차냐?"고 오히려 항의하는 승객도 있다고 한다.
진짜 몰라서 그런건지 아니면 일부러 그 점을 악용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광역전철과 일반철도가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다.
이 상황에서는 광역전철에 좌석 열차 도입이 쉽지 않다.
그리고 시민의식이 떨어지는 사람이 은근히 많은터라 분명 악용하는 사람이 엄청 많을 것이다.
이미 KTX, 새마을, 무궁화에서 무임승차가 엄청 많은 것을 보면 이런 걱정이 전혀 근거 없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좌석형 열차 도입해봐야 혼란만 더 커지고...
승객 입장에서도 너무 피곤해진다.
그렇다고 검표를 철저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여담으로...
ITX-청춘 열차과 관련해서도...
지금과 같은 운용은 좀 문제가 있어보인다.
검표를 명확히 하든가...
제일 확실한 방법은 승강장 분리인데 그것도 쉽지 않고...
일본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었으니...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면...
일반철도와 광역철도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승강장도 같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 관광객이 혼란을 겪기도 하는데...
어떤 관광객이 일본도 우리나라와 똑같다고 생각하고...
고상홈이라 당연히 우리나라 수도권 전철 같은 형태로 생각하고 아무 열차나 탔는데...
그 사람이 끊은 표로는 탈 수 없는 '특급 소닉'이었다는 일화가 있는 것처럼...
그 둘 사이가 분리되지 않고 같이 운영된다.
우리나라 철도에 굳이 비유를 하자면...
수도권 광역 전철이 새마을. 무궁화호와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수도권 광역 전철이 비둘기호 등급으로 운행하는 형태라고 보면 된다.
그럼 혼란은 없는가?
일단 많이 알려진 것처럼 일본 사람들 시민의식도 한 몫 하지만...
그에 더해서 일본은 검표가 철저한 편이다.
특급열차 뿐만 아니라 심지어 보통열차에서도 검표를 한다.
특급 열차 좌석에 검표용 티켓 주머니가 있을 정도이고...
보통 열차는 역무원이 없는 간이역을 지나는 노선에서 검표를 하게 된다.
우리나라에 놀러온 일본 관광객이 KTX 검표 안하는 것 보고 놀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일본은 '철도 문화'라는 게 발달한 전세계적으로도 특이한 나라라서...
일반인들의 철도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높은 나라다.
그래서 새로운 게 도입이 되어도 큰 혼란이 안 생기는 편이고...
열차를 혼동해서 타는 경우도 적은 편이다.
회사 출근하는 아가씨가 보기 힘든 차량(M250系)의 통과 시간을 파악해서 철도 사진을 찍고...
애기 엄마가 닥터 옐로우(신칸센 검측차량)를 알고 아이에게 설명해주는 나라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서 시작 장면에 매번 전철이 나오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일본 사례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도입하기에는 차이점이 너무 많다.
3. 결론
현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는 게 결론이다.
대안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차량, 이용객, 운임, 운용회사 등등 걸리는 게 너무 많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무궁화호가 폐지되고...
전국적으로 대도시권 위주로 광역전철 서비스가 제공되는 환경이 된다면...
그 때 좌석형 광역전철 차량 도입을 논할 여건이 될 것이다.